티스토리 뷰

반응형

민주주의가 파괴되었던 시기인 이승만 정부에 대한 역사 수행평가 자료입니다.

6.25 전쟁으로 한반도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어.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해 모두 힘을 합쳐 노력해도 모자랄 판에 있는 것마저 모두 파괴되고 말았지. 그런데 불행은 여기지 그치지 않았단다. 이승만 대통령이 날이 갈수록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독재 정치를 했기 때문이야.


1. 폭력에 맛 들인 이승만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제헌 국회에서 제정한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국회에서 선출되었어. 국회의원들을 국민의 손으로 선출했기 때문에, 그들이 국민의 뜻을 헤아려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합당하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국회의원들은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을 점점 후회하기 시작했어. 친일파를 처벌하기 위해 국회가 설치한 반민 특위를 이승만이 경찰력을 동원해 탄압한 것이 실망의 시초였어. 
그 뒤로 이승만은 친일파 인물들을 받아들여 중요한 직책에 앉혔어.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국회를 무시하고 독단적인 행동을 일삼았지.

이런 가운데 1952년이 되어 어느덧 대통령 임기 4년이 거의 끝나 가고 2대 대통령 선거가 다가왔어. 이승만은 걱정이 깊어졌어. 그때 국회에는 이승만에게 반대하는 의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거든. 이런 상황에서 선거를 치르면 이승만이 다시 대통령이 될 가망이 없었어.

이승만은 묘안을 짜냈어. 2대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헌법을 바꾸기 위해 헌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어. 국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던 것을 국민이 직접 투표해 뽑는 직선제로 바꾸자는 내용이었지. 이승만은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면 자기를 대통령으로 뽑아주리라고 믿었던 거야.

하지만 이승만의 속셈을 알고 있는 국회의원들은 직선제 개헌에 찬성하지 않았어. 그러자 이승만은 국회를 공격했어. 국회의원이 국민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며 국민이 항의하는 모양새를 만들었지. 그런데 이때 국회로 들이닥친 애국 시민 단체는 사실 이승만이 동원한 폭력배들이었어. 단체 이름도 '땃벌떼', ‘백골단' 등 살벌했지.

그들은 국회에 함부로 쳐들어가 의사당을 점령하고는 국회를 해산하라고 주장하며 국회의원들을 협박하고 폭행하기까지 했어. 하지만 그럴수록 이승만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반감은 더 커져 갔어. 헌법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더욱 적어졌지.

그러자 이승만은 비상조치를 내렸어. 임시 수도인 부산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한 거야. 계엄령은 전쟁 또는 국가의 비상사태 때 국회와 법원, 행정부의 기능을 일시 정지하고 모든 권한을 군 사령관에게 맡기는 조치야. 이승만은 6.25 전쟁 중이라는 구실을 내세웠지. 하지만 이때는 전쟁이 일어난 지 벌써 2년이 되어 가는 데다 계엄령이 선포된 지역도 부산에 한정돼 있었기 때문에, 누가 봐도 이는 국회의 힘을 빼기 위한 꼼수였어.

계엄령 아래에서 국회는 총을 든 군인들에게 점령당했어. 이에 항의하기 위해 의원들이 국회로 모여들자, 이승만은 국회의원들을 태우고 국회로 향하는 버스를 통째로 견인차로 끌고 가 헌병대에 가두었어. 의원들 가운데 12명에게는 간첩이라는 터무니없는 혐의를 씌워 구속하기도 했지.

결국 일부 의원들은 구속되고 또 일부 의원들은 폭력 단체의 행패가 무서워 국회에 나오지 않는 바람에 국회가 열리지 못했어. 국회가 열리지 않으니 헌법 개정안을 처리할 수도 없었지.

그러자 이번엔 국회의원들을 달래기 시작했어. 구속된 의원을 풀어 주면서 그 대가로 헌법 개정안에 찬성하라고 강요했지. 또 숨어 있던 의원들을 찾아내 강제로 국회로 끌어냈어. 그러고는 경찰과 군대가 국회 회의장을 삼엄하게 경계하는 가운데 헌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했어.

이런 억지를 동원한 끝에 대통령 직선제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어.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큰 상처를 입었단다


2. 사사오입 산수도 제멋대로


이승만은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로 헌법을 바꿔 대한민국의 2대 대통령이 되었어. 그 무렵만 해도 국민들이 독립운동가였던 이승만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던 데다, 이승만이 공무원과 경찰을 총동원해서 자기에게 유리한 선거 분위기를 만든 덕분이었어.

개정된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두 번까지만 할 수 있었어. 그런데 1954년, 2대 대통령 임기가 절반쯤 되자 이승만은 생각이 달라졌어. 계속 대통령을 하고 싶어졌던 거야. 그래서 이번에도 꾀를 냈어. 나라를 세운 위대한 공로가 있는 초대 대통령에 한해서 횟수와 관계없이 대통령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을 집어넣은 헌법 개정안을 또 제출한 거야. 때마침 여당인 자유당 의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서 이승만으로서는 한번 시도해 볼 만한 일이었지

그런데 헌법 개정안은 전체 국회의원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만 통과될 수 있었어. 이는 자유당으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어. 그때 국회의원의 수가 203명이었으므로, 최소한 136명의 찬성이 필요했어. 정확하게는 203명의 3분의 2는 135.333......인데, 사람 수에 소수점을 적용할 수는 없기 때문에 136명이 되는 거지.

그런데 여기에서 운명의 장난이 일어났어. 투표 결과 찬성 의원 수가 딱 135명이었거든. 찬성표가 135.333......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부결된 것이었지. 그러나 이승만은 포기하지 않고 자기에게 충성하는 학자들을 시켜 궤변을 늘어놓았어. 135.333...... 에서 소수점 이하를 반올림하면 135가 되므로, 135표로 이 안건은 가결된 것이라는 주장이었어.


이 주장은 누가 봐도 억지 였지만, 이승만은 자신에게 충성하는 학자들을 내세워 옳다고 우기며 끝내 가결로 밀어붙였어. 그 무렵에는 반올림을 "4 이하는 버리고 5 이상은 올린다."는 뜻으로 ‘사사오입'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 개헌을 ‘사사오입 개헌'이라고 해. 이는 두고두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정치 사기극이었어.

개헌은 억지로 밀어붙였지만, 그것을 지켜본 국민들이 다음번 대통령 선거때 이승만을 다시 대통령으로 선택할지는 예측할 수 없었어. 과연 선거전이 시작되자 많은 국민들은 야당 후보인 신익희를 지지했어.

한강 변 백사장에서 열린 신익희의 유세에는 3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어. 그 자리에서 신익희가 이승만의 장기 집권을 비판하며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를 외치자 청중은 크게 호응해 주었어. 

이 무렵 우리나라는 해방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전쟁으로 온 국토가 쑥대밭이 되고 국민들의 살림살이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어. 그래서 민심은 이승만의 재집권을 찬성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어 갔단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운명의 여신은 또다시 우리나라에 등을 돌렸어. 신익희가 선거 유세를 위해 열차로 이동하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거야.


3. 3권 분립이 무너지다


신익희 후보가 사망하는 바람에 이승만은 간신히 3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어. 그렇지만 이런 ‘행운'이 다음 선거에도 또 찾아올 거라는 보장은 없었어. 더구나 신익희가 사망하자 상당수 유권자들이 제3당인 진보당의 조봉암 후보에게 표를 주었거든. 이승만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지.

실제로 조봉암은 다음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였고 국민들의 인기를 얻어 갔어. 그러자 위기감을 느낀 이승만은 조봉암이 아예 대통령 후보로 나서지 못하게 이번에도 변칙을 썼어. 

그것은 조봉암을 법을 위반한 범죄자로 만드는 거였지. 이승만의 지시에 따라 검찰은 유력 대통령 후보였던 조봉암을 간첩 혐의로 체포했어. 조봉암이 선거 공약으로 내건 ‘평화 통일'은 북한의 주장과 같으므로, 조봉암이 북한과 내통한 간첩이 틀림없다는 거였어.

사실 조봉암이 내세운 ‘평화 통일'은 이승만의 정책과 정반대되는 주장이었어. 이승만은 6. 25 전쟁 이래 줄곧 ‘북진 통일'을 외쳐 왔거든. 북한은 ‘평화롭게'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상대가 아니기 때문에 군사력으로 북한을 무찔러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것이었지. 

그래서 조봉암의 주장이 북한을 편드는 위험한 주장이라고 몰아 붙였던거야. 하지만 조봉암이 간첩 행위를 했다는 혐의를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는 증거는 별로 없었어. 그래서 1심 재판부는 간첩죄는 무죄로 판결하고, 적을 이롭게 했다는 국가 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하여 5년 형을 선고했어. 

이후 그 판결을 내린 판사는 이승만 정부가 동원한 폭력배의 위협에시달려야 했고, 2심 재판은 법정 안팎에서 폭력 단체들이 조봉암을 간첩으로 처벌하라며 압박하는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어. 결국 2심 판사는 1심을 뒤집고조봉암에게 사형을 선고했어. 대법원마저도 권력의 압력에 굴복해 사형을 확정했지. 

게다가 보통은 사형이 확정되어도 일정한 기간 동안 집행하지 않는 것이 관례인데, 조봉암에게는 예외적으로 형이 확정되자마자 곧바로 사형을 집행했어. 이승만이 바라는 대로 대통령선거에 후보자로 영영 나올 수 없게 한 거지.

조봉암 사건은 이승만이 국회를 짓밟은 데 이어 법원마저도 권력의 하수인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뜻했어. 제대로 된 민주주의는 국회, 법원, 정부 세 기관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야 해. 이것이 3권 분립의 원칙이지. 그런데 이승만은 대통령의 권력으로 3권 분립 원칙을 무너뜨렸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이 의심스러울 지경이 된 거야.

이제 다음번 선거는 아무도 이승만의 앞길을 막지 못하는 무법천지가 될 판이었지.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고난 속에서도 깨닫는 바가 있었어. '민주주의는 위에서 통치자가 그냥 베푸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나서서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워 얻어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야.



반응형
반응형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