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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건국과정'을 알아보는 역사 수행평가용 자료입니다.


38선 남쪽의 정세가 단독 선거와 단독 정부 수립으로 치닫자, 38선 북쪽 소련군 점령 지역에서도 이에 대응하는 움직임이 펼쳐졌어. 남쪽에서 굳이 단독 정부를 수립하겠다면, 북쪽도 어쩔 수 없이 따로 정부를 세워야겠다는 것이었지.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북한이라고 부르는 정부, 즉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 탄생하게 되었단다.


1. 누가 먼저 분단을 꾀했나?


남과 북 어느 쪽에 분단의 책임이 있느냐고 물으면 남쪽 사람들 대부분은 북쪽이라고 대답할 거야. 

그러나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어. 북쪽의 사회주의 세력이 처음부터 분단을 생각하고 있었다거나, 아니면 남북 모두 동시에 각각 단독 정부를 수립할 생각이었다고 보는 것은 사실과 달라.


해방을 전후하여 국내 각 정치 세력의 판도를 보면 사회주의 진영과 중도 진영이 민족주의 진영보다 훨씬 우세했어. 

민족주의 진영의 상당수는 이미 친일파로 돌아선 뒤였지.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를 세운다면 그 정부는 당연히 사회주의 세력이 주도하게 돼 있었어. 

따라서 사회주의 진영에서 먼저 단독 정부 수립을 추진할 이유는 없었지.


오히려 남쪽의 이승만 세력이 단독 정부 수립을 추진하자, 김구를 비롯한 민족주의 진영뿐 아니라 김규식을 비롯한 중도 진영까지, 남쪽의 다수 세력이 그에 반대하는 상황이 벌어졌어. 

정치 세력 측면에서만 보면 이승만 세력은 남쪽에서도 분명히 소수파였어. 

북은 남에서 이승만에게 반대하는 세력을 끌어들이면 이승만 세력을 고립시킬 수 있고, 단독 정부 수립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북의 지도자 김일성은 1948년 4월 평양에서 ‘전조선 제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를 열었어. 

이 회의에는 남북한 56개 단체의 대표 695명이 참석했어. 

그 가운데는 남쪽의 지도급 인사인 김구와 김규식도 포함되어 있었지. 말하자면 남쪽의 이승만 세력을 빼고는 다 참석한 모양새가 된 거야


이 회의에서 공동 성명을 발표했는데, "외국 군대는 한국에서 즉시 철수할 것, 그 뒤 전 조선 정치 회의를 소집하여 민주주의 임시 정부를 수립할 것, 이를 통해 통일 민주 정부를 수립할 것이며 남한 단독 선거는 절대 반대할 것" 등이 주요 내용이었어. 

문구 자체로 보면 나무랄 데 없는 내용이 있지. 사실 이것은 그동안 소련이 주장해 온 것과 같은 내용이었어. 

곧 미국이 한국에서 손을 떼면 자연스럽게 사회주의 세력이 주도하는 정부가 세워지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던 거야.


그러나 남에서 이승만은 5.10 총선거를 밀어붙였어. 

이 선거에 참여한 남쪽 국민은 예상 밖으로 많았어. 

처음으로 해 보는 직접 투표에 모두 큰 관심을 보였지. 

이렇게 되니 38선 남쪽에 단독 정부가 수립되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어. 

북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남에 대응하는 단독 정부를 세워 나갔단다.

 



2. 분단의 비극이 현실이 되다


그동안 38선 이북의 상황은 남쪽과는 사뭇 달랐어. 

소련 군정은 미 군정과 마찬가지로 건국 준비 위원회를 인정하지 않았어. 

하지만 김일성을 비롯한 사회주의자들과 조만식 등 민족주의자들이 서로 힘을 모아 행정 구역별로 인민 위원회를 구성하도록 도왔어. 

 

이 인민 위원회가 각 지역에서 일제가 물러간 뒤의 혼란을 정리하고 질서를 잡는 데 큰 역할을 했지.
정국이 안정되자 인민 위원회에서는 토지 개혁을 실시해 일제와 지주가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몰수한 뒤 농민들에게 나눠 주었어.
조선 인민군이라는 군대도 창설했지. 실질적인 정부의 모습을 착착 갖추어 나가고 있었던 거야.


이처럼 북의 상황은 남에서 미 군정이 여러 정치 세력과 갈등을 빚고 있던 것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지. 

그런 가운데 1948년 남에서 단독 정부를 세우는 길로 나아간 거야.
남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지 10일 뒤인 8월 25일, 북의 김일성이 이끄는 인민 위원회는 남북한 전역에 걸쳐 선거를 실시한다고 발표했어. 

이승만의 단독 정부와 달리 북과 남 전체를 포함하는 전국 선거를 거쳐 정통성 있는 통일 정부를 세우겠다는 것이었어.


북쪽에서 치르는 선거는 문제가 없겠지만, 남쪽에서 치르는 선거는 이승만 정부에 의해 불법으로 탄압받을 게 뻔했지. 

그래서 각 시와 군에서 비밀투표로 5명 또는 7명의 대표를 선출하고, 그렇게 선출된 대표 1,080명이 북한 지역인 해주에 모여 그 자리에서 360명의 남쪽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을 택했어. 


북쪽의 주장에 따르면 남쪽 주민의 77.5퍼센트가 투표에 참여했다고 해. 

하지만 투표가 철저한 비밀 속에 진행된 데다 근거 자료가 없으니 그 수치를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
어쨌든 북한은 전국 선거를 거쳐 최고 인민 위원회를 구성하고 헌법을 제정한 뒤 그동안 실제로 북쪽 진영을 이끌어 온 김일성을 수상으로 선출했어. 

 

그러고는 9월 9일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단다. 

북쪽의 이 정부는 사실 38선 이북을 관할하는 분단 정부였지만, 명목만은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는 통일 정부라고 내세웠지. 

그래서 수도는 서울로 한다고 선포했어. 평양에 근거지를 두고 있으면서도 수도를 서울로 정한 것은 머지않아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으로 통합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지.


이렇게 해서 한반도에는 두 개의 정부가 세워졌어. 

해방 이후 3년의 과정을 보면 결국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과 소련군 각 진영에 따로 정부가 수립된 셈이야. 

대한민국도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도 이것은 임시일 뿐, 머지않아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또 다른 엄청난 비극을 불러오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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