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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혁명적 농민조합 운동

2. 일제의 강제 징용과 위안부 모집

 

 

 

(근현대사) 1. 일제 강점기 1910년대 (1910년~1919년)

목차 1. 잃어버린 세월 2. 독립운동 전개 3. 해외에서의 항일운동 1. 잃어버린 세월 일제 강점기는 1910년 8월 29일부터 1945년 8월 15일 까지를 말한다. 한국의 역사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시대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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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혁명적 농민조합 운동

 

1937년부터 1944년까지 징용자와 위안부 차출 혹은 공출, 자원 징용자라는 명목으로 강제로 끌어갔다. 이렇게 된 배경은 1935년 3월 하순 함정 남도 단천에서 3000여 명의 농민들이 대규모로 적색 농민조합 운동을 일으킨 것이 간접적 원인이 되었다.

 

농민조합 운동가들은 농촌 내의 기존 청년동맹. 여성동맹. 소년동맹을 혁명적 농민조합에 편입해 각각 농민조합의 청년부. 부녀부. 소년부로 만들어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농민의 이익을 위해 항일 투쟁에 나섰던 것이다.

 

혁명적 농민조합의 지도 아래 농민들은 격렬한 반일 민족 해방 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함경북도 명천의 농민들은 동과 면마다 계엄대. 동지 탈환대. 규찰대. 연락대 등을 조직하고 일본의 폭력에 맞서 싸우는 등 투쟁을 대중적 폭동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혁명적 농민조합은 전국 70여 개 군에 조직되었고, 1931년부터-1935년까지 계속되었는데 경찰에 적발된 혁명적 농민조합 사건은 43건, 검거된 사람은 4,121명에 이르렀다.

 

중-일 전쟁이 일어난 뒤 더욱 가혹해진 상황에서도 혁명적 농민조합 운동은 비밀리에 계속되었다. 그러자 일본은 농민들을 강제로 탄광 등으로 끌어가고 여성들을 위안부로 끌어가는 만행을 시작하였다.

 

 

2. 일제의 강제 징용과 위안부 모집

 

조선총독부와 일본 정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위안부와 징용자들을 모집하였다. 이 와중에 직공을 차출한다는 광고를 보고 속임수로 끌려간 이들도 있고, 일부는 속임수 광고를 보고 위안부나 징용으로 가기도 했다.

 

일본군 사령부 혹은 군납 업체에서는 위안부를 모집하기 위해 신문 광고, 잡지 광고, 방송 광고 등을 통해 다음과 같은 거짓 모집 광고를 냈다.

 

<광고 1>

위안부 지급(至急) 대모집 (위안부를 급히 대 모집)

연령 : 17세 이상 30세 이하

근선 (勤先. 근무지) : 후방 부대 위안 부대

월 급 : 300원 이 상 (전차 (前借) 3000원 이하)

 

 

<광고 2>

군 위안부 급구

행선지 : 부대 위안소

지원자격 : 연령 18세 이상 30세 이내 신체 강건한 여성

모집기일 : 10월 27일부터 11월 8일까지

계약급 대우 : 본인 면접 후 즉시 결정

모집인원 : 수십 명, 희망자 좌기 장소에 도착하여 질문할 것

경성부 종로구 낙원정 195번지, 조선여관 내 광 3-263호, 허 씨

 

1944년 당시 위안부 모집은 경성부 종로구 낙원정(지금의 낙원동)에 있었으며 징모 담당자는 허 씨라는 사람이었다. 다만 군인이 모집할 경우에는 소속 부대와 관등성명이 기입되었다.

 

중. 일 전쟁 이후 일본의 식민지에서는 위안부 모집 광고 방송 등이 실렸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를 거부한 언론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만이 유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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