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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코리아'로 국위 떨친 '고려'
2. 세분화된 통치제도
3. 문화의 융성
4. 고려청자의 신비
5. 생활과 명절
1. '코리아'로 국위 떨친 '고려'
고려는 전시과 제도를 만드는 등 토지 제도를 정비하여 통치 체제의 토대를 확립하였다. 문란해진 재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토지와 인구를 파악하는 양안사업을 실시하고 호적을 작성하였다. 이것을 근거로 조세, 공물, 부역 등을 부과하였다.
국가가 주도하여 산업을 재편하면서 경작지를 확대시키고, 상업과 수공업의 체제를 확립하여 안정된 경제 기반을 확보하였다. 개경의 외항인 벽란도에는 중국, 일본, 아라비아, 페르시아 등지의 상인들이 와서 활발하게 무역하여 인삼, 농기구, 도자기 등을 수출하고 유리 공예품, 서적, 비단 등을 수입했다.
고려의 수출품으로는 금, 은, 구리, 인삼, 잣, 모피 등의 원산품과 능라비단, 저마포, 금은장도, 그밖에 종이, 붓, 먹 등 가공품이 많았다.
활발한 무역을 통해 고려를 영어식 발음의 꼬레아, 코리아로 불렀다. '코리아'라는 명칭은 이렇게 생겨났다.
2. 세분화된 통치제도
고려는 새로운 통일 왕조로서 커다란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고려는 고대 사회에서 중세 사회로 넘어오는 역사적 발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외세의 도움 없이 한민족이 단결하여 세운 최초의 진정한 통일 국가였다.
고려는 신라 말기의 6두품 출신 지식인과 호족 출신을 중심으로 세운 나라였다. 골품 위주의 신라 사회보다는 더 개방적이었고, 통치 체제도 과거제를 실시하는 등 효율성과 합리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정비되었다. 사상적으로 유교의 정치 이념을 수용하여 고대 사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태조 왕건과 제4대 광종은 연호를 세워 대외적으로도 국위를 드높였다. 다른 고려의 왕들도 스스로를 '짐', 수도를 '황성', 군주의 존칭을 '폐하', 다음 임금에 오를 후계자를 '정윤' 또는 '태자'라 하고, 군주의 어머니를 '태후', 군주의 명령을 '조와 칙'으로 부르는 등 제국의 제도를 사용해 왔다.
고려 시대는 외적의 침입이 유달리 많았던 시기였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줄기찬 항쟁으로 이를 극복하였다.
12세기 후반 무신들이 일으킨 무신정변은 종전의 문신 귀족 중심의 사회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어, 신분이 낮은 사람도 정치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무신 집권기와 원나라 지배기를 지나 고려 후기에는 새롭게 성장한 신진 사대부를 중심으로 성리학이 수용되어 합리적이고 민본적인 정치이념이 성립되었고, 사회 개혁도 진행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은 태봉과 신라의 제도를 아울러 사용하였다. 이것은 신라 시대의 골품제를 청산하고 왕권이 확립될 때까지의 과도기적 조치에 지나지 않았다. 나라의 기반이 튼튼해지고 왕권이 확립된 제6대 성종에서 제11대 문종에 이르는 기간에 당, 송나라의 제도를 수입하여 관제를 정비 완성하였다. 임금의 최고 고문으로 대사, 태부, 태보 삼사(三師)와 삼공(三公)을 두었다. 이는 국가 최고의 영예직일 뿐 실무는 맡지 않았다.
중앙행정의 최고기관으로는 삼성과 육부를 두었다.
3성은 문하, 중서, 상서의 세 성으로 당나라의 제도를 모방한 것이다. 문하성은 임금의 명령을 전달하고, 신하들의 건의를 받아들이는 사무를 관장하고, 중서성은 조칙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며, 상서성은 실지로 나라의 정치를 맡아보는 집행 기관이며, 그 밑에 6부가 있었다.
문하성의 장관을 시중이라 하여 수상 격이었고, 중서성의 장관은 중서령, 상서성의 장관은 상서령이라 하였다. 이성의 고관을 재신이라 불렀다. 상서성의 지휘를 받는 육부는 이부, 명부, 호부, 형부, 예부, 공부였다.
이부는 관리의 임면과 상벌을 맡았다.
병부는 무관의 임면, 군무의, 의장, 우역을 담당했다.
호부는 호구, 부역, 전량을 맡았다.
형부는 법령, 소송, 형벌을 관장했다.
예부는 예의, 제사, 조회, 교빙, 학교, 과거시험을 전담했다.
공부는 산택, 공장, 영조를 맡았다.
3성과 거의 같은 자격을 가진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을 두어 국가 재정을 통일하였다. 군국의 기밀과 숙위를 맡은 기관을 중추원이라 하고 그 장관을 판원사라 하였다. 중추원은 삼성과 더불어 국가의 최고기관으로, 그 고관을 추신이라 불렀다.
특수 기관으로 국가의 주요한 격식을 결정하는 식목도감, 감찰을 맡은 사헌대, 왕의 명령을 받드는 한림원, 모든 시정방침을 기록하는 사관, 대학으로 국자감이 따로 있었다. 보문각은 경연과 장서를 맡았고, 어서원은 왕실 도서관이었고, 비서성은 경서와 상소문을 맡았다.
재주 있는 문신을 뽑아 임금을 모시게 한 홍문관, 조회와 의식을 맡은 합문, 제사와 시호를 내리는 태상시, 감옥을 맡은 대리시, 외국 사절을 맞이하는 예빈시, 시장을 단속하는 경시서, 왕실과 종친의 족보를 맡은 전중성, 왕실의 의약과 질병 치료 등을 맡은 태의감, 왕의 출장과 어가 등을 맡은 공역서 등이 있었다.
고려의 지방제도는 건국 초기에는 미처 중앙의 행정력이 지방에까지 미칠 수가 없어서 지방행정은 호족들에게 맡긴 상태였다.
983년 제6대 성종 때에 12목을 두어 중앙의 관원을 파견한 것이 지방관제의 시초였다. 성종 14년에 경기 이외의 전국을 10도와 12주로 나누고 절도사를 두고 그 아래로 단련사, 자사, 방어사 등 외관을 설치하였다. 그 뒤에 전국을 5도 양계와 경기로 크게 구분하고, 그 안에 3경, 4도호부, 8목과 군, 현, 진 등을 두었다.
3. 문화의 융성
고려의 기술적 발전을 대표하는 인쇄술과 고려청자는 귀족문화의 소산이었다. 역사학이 발달하여 많은 서적이 편찬되었다. 새로운 형식의 시가인 경기체가와 장가가 나타났다.
금속활자의 사용은 서양보다 약 200여 년 앞선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를 사용한 것이다. 중세의 예술은 귀족중심의 우아하고 세련된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천문학 및 천체관측이 특히 발달하였다. 관측기록은 독자적이고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나와 있다. 고려 말에는 화약을 제조하였고, 배를 만드는 조선기술이 뛰어났다. 특히 군사용 병선 제조 기술이 뛰어났다.
최무선은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무신, 과학자, 화약 발명가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화약에 쓰는 염초 개발법을 익혔으며, 화약과 화약을 이용한 무기를 제조했고, 새로운 발사기구를 발명하였다.
지리적으로 중국 중심에서 벗어나 동양 중세의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도와 중앙아시아까지 넓은 지역과 교역하였다. 아라비아와 중동 지역의 지리적 지식도 가지고 있었다. 고려의 의학은 958년에 시작된 과거제도에 의학부문이 포함되고, 중국과 고려의 의학 서적을 간행하였다.
건축과 조각에서는 고대의 성격을 벗어나 중세적 양식을 창출하였으며, 청자와 인쇄술은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정확한 건조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중기 후반경의 건축물로 추측된다.
그림과 문학에서도 중세의 높은 품격을 보여 주었다.
고려 초기에 실시한 과거제와 함께 한문학이 크게 발달하였고, 성종 이후부터는 문치주의가 성행함에 따라 필수 교양으로 발전하였다.
4. 고려청자의 신비
고려 사람들은 사치 생활을 충족하기 위하여 다양한 예술 작품들을 만들어 즐겼다.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분야는 공예와 고려청자이다. 공예는 생활 도구와 불교의 식에 사용되는 도구를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특히 자기 공예가 뛰어났다.
고려 후기의 문화는 조계종의 융성과 주자학의 전래가 특징적이다. 불교에는 백운, 패고, 나옹, 무학 등 고승들이 나타났다.
주자학은 충렬왕 이후 유교의 진흥으로 중국에서 전래되어 점차 발달하면서 불교를 배척하는 기운을 보였다.
미술에 있어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한국에서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을 비롯하여 많은 건축물들이 당대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석탑, 석부도 등도 당시의 예술을 말해준다. 또 회화도 점점 발달하였다. 무엇보다 특기할 것으로는 목화씨의 전래 및 화약의 제조이다.
5. 생활과 명절
불교가 성행함에 따라 사람이 죽으면 화장하는 풍습이 생겼고, 부모상에는 대개 100일 동안 복상하였다. 삼 년 동안 복상하는 습관은 말기의 정몽주 등 유학자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무속은 주로 무당들이 일으켰다. 산신을 비롯하여 기타 여러 귀신들이 많이 등장했다. 설, 정월 보름, 한식, 단오, 추석, 동지, 팔관회 및 성상절(임금의 생일)을 명절로 지냈다.
이 밖에 인일(음력 1월 7일), 입춘, 2월 연등, 3월 삼짇날(음력 3월 3일), 사월 초파일, 유두(음력 6월 15일), 우란분회(음력 7월 15일), 중양절 (음력 9월 9일)도 기념하였다.
설에는 차례를 지내고 관청에서도 전후 7일의 휴가를 주었다. 보름에는 다리밟기, 입춘에는 첩자(帖子)를 써 붙였고, 한식에는 성묘와 그네, 삼짇날에는 들놀이에 쑥떡을 먹었다. 사월 초파일에는 집집이 연등을 달았고, 단오에는 공치기, 석전(石戰), 그네, 성묘, 유두(음력 6월 15일)에는 머리를 감아 액을 씻었고, 우란분회(음력 7월 15일 백중날)에 사찰에서 행하는 행사)에 절에 가서 공양했고, 추석과 중양절 (음력 9월 9일)에도 성묘와 놀이, 동지에는 팥죽을 먹었다.
(고려사) 1. 왕건의 고려 건국, 숭불정책, 거란, 여진과 대결, 서희, 강감찬, 윤관의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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