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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태조 이성계
2. 국호 변경과 한양천도
3. 태조를 다스린 무학대사
4. 함흥차사


 

1. 태조 이성계


이성계는 왜구와 홍건적을 진압하면서 새로운 무인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이성계는 정도전을 비롯한 신흥 사대부들과 결합하였고, 이들은 점차 권문세족을 압박하는 개혁을 확대하여 정치, 경제적인 기반을 확보하였다.

마침내 조준, 정도전 등 급진적 개혁을 추구하는 역성혁명파가 온건한 개량을 주장하는  이색, 정몽주 등의 반대파를 꺾고 이성계를 왕으로 옹립함으로써 고려에서 조선(朝鮮)으로 왕조가 바뀌게 되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뀜에 따라 국가사회로서는 연속성을 가졌던 반면에 기존 국가사회 자체가 멸망하여 영토와 국민이 크게 변동하였던 앞의 시대인 삼국시대, 통일신라, 발해의 변화나, 남북국시대에서 후삼국을 거쳐 고려에 이르는 왕조의 변화와는 아주 다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이를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고 한다.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변화는 왕실과 왕조로서는 종말과 동시에 새로운 개국이었으나, 영토와 국민은 그대로였다. 고려 말 당시 국가체제 안에 포괄된 지배층 내에서 정권교체라는 성격을 강하게 갖는 것이었다. 정권교체의 면에서는 고려 후기 이후 광범한 사회변동 속에서 어림으로 추측하는 암중모색의 개혁이 확고한 방향을 잡고 새로운 체제를 구체화시키는 결실을 보게 되었다.


2. 국호 변경과 한양천도


1388년 고려 무신이었던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으로 군사정변을 일으켜 창왕과 공양왕을 왕위에 올렸다가 폐위시키면서 정권과 군권을 장악하고 전제 개혁을 단행하였다. 경제적인 실권까지 장악한 뒤, 1392년 8월 5일, 개경 수창궁에서 이성계가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이로써 고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나라 조선이 건국된 것이다.

이성계는 건국 후 1년이 지난 뒤에야 국호를 바꾸었다. 또 1년 뒤인 1394년에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고 여러 개혁을 단행했다. 태조는 고려 때에 큰 폐단이 되었던 불교 대신에 유교를 존중하여 이를 정치, 교육의 근본이념으로 삼으니, 불교는 점점 쇠퇴하여 천대를  받고, 유교는 극진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이를 조선의 억불숭유정책이라고 한다.

3대 태종은 왕권을 강화하고 임금 중심의 통치 체제를 정비하기 위해 관료제도를 정비하였다.
4대 세종은 한글인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을 비롯해 학문, 군사, 과학, 문화 등 모든 면에서 큰 업적을 이룩하였다. 이 당시에 과학이 크게 발전했다.
세조는 태종처럼 신권을 제한하여 왕권이 강력하게 강화되었고, <동국통감>, <국조보감> 등을 만들기도 했다. 성종은 개국 이후의 문물제도를 정비했다. 15세기말부터 지방의 사림 세력이 정계에서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태조 이성계의 청룡포>


역대 임금들의 어진은 모두 홍룡포 차림인데 유독 경기전의 태조 어진만 청룡포를 입고 있다. 이러한 점은 조선 숙종 때도 이 문제에 의문을 가져 신하들과 논의했는데 우리나라를 의미했던 청색은 고려시대에 숭배되어 왔다. 개국 초기였던 태조 때에도 용포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3. 태조를 다스린 무학대사


무학은 고려 말, 조선 초기의 승려이다. 성명은 박자초이며, 법명은 무학이다. 조선 태조에 의해 왕사가 되었으며, 한양 천도를 도왔다. 1327년 경상도 합천에서 태어났다. 무학의 부모는 왜구에게 끌려갔다가 돌아온 하층민으로 갈대로 삿갓을 만들어 팔았다. 이러한 사정으로 무학의 어렸을 적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18세 때 송광사에 들어가 소지 선사 밑에서 승려가 되었다. 용문산 혜명 국사로부터 불법을 전수받고 묘향산 금강굴에서 수도하였다. 1353년 원나라 연경에 유학하여 인도의  지공 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1356년에 고려로 돌아왔다.

1364년 나옹은 회암사를 중건하고 무학을 불러 수좌승으로 삼았다. 나옹이 사망한 뒤에는 무학은 전국을 돌며 수행하였는데, 이때 이성계와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무학은 이성계의 꿈을 해몽하여 석왕사를 짓게 해 준 인연으로 이성계의 특별대우를 받았다.

1392년 조선 개국 후 왕사가 되고 묘엄존자 호를 받았으며 회암사에 있었다. 개국 직후부터 태조는 도읍지를 옮기려 했다. 수도를 옮기려는 태조 이성계를 따라 계룡산 및 한양을 돌아다니며 땅의 모양을 보고 도읍을 정하는 것에 의견을 내었다.

계룡산을 둘러본 뒤 한양을 도읍지로 권하였다. 무학은 삼각산에 이어 목멱산(오늘날의 서울 남산)에 올랐다. 이곳이 적당하다고 쾌재를 부르는 순간, 한 노인이 소를 타고 지나가다가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이놈의 소! 미련하기가 무학과 똑같구나. 바른 길을 버리고 굽은 길을 찾아가다니, 이랴!"하고 소리를 질렀다. 무학은 깜짝 놀라서 노인을 쫓아가 좋은 터를 알려달라고 간청했다. 노인은 "여기서 서쪽으로 십리를 더 가면 알리라.” 하고 사라졌다.

삼각산을 거쳐 백악산 밑에 도착한 무학은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고 백악과 남산으로 좌우 용호로 삼아 궁궐터로 정하고 태조에게 아뢰어 궁궐터로 정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정도전이 반대하고 나섰다.
예로부터 제왕은 모두 남향을 향하여 나라를 다스려왔고, 동향했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정도전의 건의에 따라 다시 잡은 자리가 북악산 밑 경복궁 자리이다. 본래 무학이 잡은 자리는 종로의 필운동 근처였는데 그 방향을 조금 남쪽으로 틀어 경복궁으로 정했다고  한다.

1394년 8월 태조는 마침내 천도를 명령하고, 10월 태조는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개경을 출발하여 한양으로 들어왔다. 새 수도의 이름을 한성부로 고친 뒤 12월부터 본격적인 대궐 공사에 들어갔다.


4. 함흥차사


조선 태조 이성계는 다섯째 아들 태종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형제들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자 한양을 버리고 고향인 함흥으로 내려갔다.

태종이 문안 사자를 보내면 태조가 죽여 버리는지라, 문안 가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때 판중추부사를 지낸 박순이 스스로 나섰다. 박순은 사자의 수레를 타지 않고 새끼가 딸린 어미 말을 타고 함흥으로 갔다.

함흥 근처 행채소(行在所 왕이 공을 떠나 멀리 나들이할 때 머무는 곳)가 보이자, 박순은 말에서 내려 망아지를 길가에 메어 놓고, 어미 말만 끌고 태조 앞에 나아갔다. 그러자 
어미 말과 망아지는 서로를 보면서 애처롭게 우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태조는 박순에게 물었다.

"저 말이 왜 저리 슬피 우는가?"
"비록 동물이지만 모자의 정이 지극하여 그러는 모양입니다."

태조는 박순의 대답을 듣고 가슴 한구석이 찔리는 데가 있었는지 불쾌한 심기를 드러냈다. 
"내가 짐승만도 못하단 말인가?"
하루는 박순이 태조와 바둑을 두는데 천정에서 쥐 한 마리가 새끼를 물고 떨어졌다. 그 쥐를 잡는데, 어미 쥐는 자기가 죽게 될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끝까지 새끼를 놓지 않았다. 
이것을 보고 있던 박순은 바둑판을 밀어 놓고 태조 앞에 엎드려 울며 간곡히 아뢰었다.

"한낱 미물들도 저렇거늘 전하께서는 어찌 이렇게 떨어져 지내신단 말씀입니까?"
박순의 간절한 말에 태조의 굳었던 마음이 움직였다.
"한양으로 돌아가겠노라."


태조는 마침내 약속을 하였다. 박순이 하직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데, 태조를 모시고 있던 신하들이 박순을 살려 보내는데 반발하여 그를 죽여야 한다고 청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를 추격하되 그가 용흥강(오늘날 함경남도 소재)을 이미 건넜으면 그냥 돌아오고, 건너지 못했으면 죽여 없애라."

태조는 나름대로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태조는 뒤쫓는 신하가 용흥강에 닿았을 때는 박순이 이미 강을 건넜을 것으로 믿고, 이렇게 마지못해 분부했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박순은 막 배에 오르려는 찰나 허리에 칼을 맞고 쓰러졌다.


태조는 통곡하며 말했다.
"박순은 좋은 친구였는데 내가 그를 죽였구나! 그와의 약속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리라."
이런 연유로 한 번 가기만 하면 돌아오지 않고 깜깜무소식이라는 뜻으로 함흥차사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조선사 읽을 거리]

 

(조선사) 1. 조선의 건국 - 한양천도, 무학대사, 함흥차사 이야기

(조선사) 2. 새 역사 500년 - 조선 시대의 구분

(조선사) 3. 조선 초기 - 왕자의 난, 사대교린 정책, 세종의 업적, 단종애사, 사육신과 생육신

(조선사) 4. 붕당정치와 당파싸움, 무오사회, 갑자사회, 기묘사화, 금삼의 피, 임꺽정의 출현

(조선사) 5.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조선사) 6. 광해군 폐위과 인조반정, 삼전도의 굴욕, 세도정치, 사도세자, 홍경래의 난과 김삿갓

(조선사) 7. 복잡한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과 쇄국정책, 강화도조약과 임오군란

(조선사) 8.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을미사변, 아관파천 명성황후 시해사건

(조선사) 9. 대한제국의 탄생과 멸망, 헤이그특사, 한일합방과 식민통치

(조선사) 10. 광무개혁, 단발령, 을사늑약

(조선사) 11. 문맹퇴치 운동, 브나로드(계몽)운동, 한국어 사용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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