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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광무개혁
2. 분노의 단발령
3. 을사늑약
1. 광무개혁
1899년 광무 3년 오늘날의 헌법과 같은 <대한국 국제>를 반포하여 황권의 절대성을 명시하였다. 이어서 고종황제는 국정의 주요 권한을 황제에게 집중시켜 전제군 주제 강화를 추구하였고 갑오개혁 때 23부로 개편한 행정을 13도로 다시 고쳤다.
토지개혁을 이루고자 양전 사업을 시행하고 지계를 발급하여 근대의 특징이 될 만한 토지 소유 제도를 마련하였고 상공업 진흥책을 추진하였다. 이를 광무개혁이라고 한다. 대한천일은행과 한성은행을 비롯한 여러 은행을 설립하였고, 교육 진흥책을 추진하여 기술학교와 사범학교와 관립학교를 설립하였고, 교통, 통신, 전기, 의료를 위시한 근대 시설을 도입하였다.
<경복궁에 전기를 밝히다.>
조선 왕실은 미국의 신문물을 시찰하고 온 보빙시 건의에 따라 1884년 에디슨 전기회사와 전등 설비를 위한 계약을 한다. 이어 1886년 11월 미국인 전등기사 매케이를 초빙해 1887년 1월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발전소인 전기등소(電氣燈所)를 경복궁 안에 완공했다. 최초 점등일은 1887년 1~3월 무렵으로 추정된다.
러시아와 대립하던 일본은 1904년 2월 한반도와 만주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한반도에서 러일 전쟁을 일으켰다. 러일 전쟁은 다음 해인 1905년 일본이 승리하고 포츠머스조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일본 제국이 전략적인 승리를 얻어 한반도에 영향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때 일본은 1905년에 제2차 한일 협약성립을 일방으로 발표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한성에 조선통감부를 설치하였다.
이로써 통감정치가 시작된 것이다.
1904년 광무8년 2월에 한일 의정서 체결을 강요하고, 나아가 8월에 제1차 한일 협약을 강제로 체결한 이래 외교와 재정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 고문을 두고 대한제국 내정을 간섭하였는데, 이것을 고문 정치라고 한다.
이때 고문으로 들어온 메가다는 화폐 정리 사업이라는 명목하로 대한제국의 자본을 몰락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미국인 더럼 스티븐슨을 대한제국 외교 고문으로 위촉하고 일본의 침략을 선전하면서 앞장서게 하였다. 스티븐슨은 그 뒤에 미국 오클랜드 기차역에서 장인환과 전명운 두 사람에게 암살당했다.
1905년 제2차 한일 협약을 강제로 체결했을 때, 일본은 이를 을사보호조약이라고 선전했으나 우리는 을사늑약이라고 맞섰다. 이에 양반과 지식인층 중심으로 일본의 침략을 규탄하고 을사늑약의 폐기를 주장하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민영환은 자결로써 항거하였고 조병세는 조약의 폐기를 요구하는 상소 운동을 벌였다.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은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신문 논설을 실어 을사5적을 규탄하였다.
5적 암살단이 조직 되어 을사5적의 저택을 불 지르고 일진회 사무실을 습격하였으며, 민종식, 신돌석, 최익현은 의병을 조직해 무장항전을 벌였다.
2. 분노의 단발령
단발령은 김홍집 내각 때인 고종 32년인 1895년 양력 12월 30일 성인 남자의 상투를 자르게 한 명령이었다. 고종이 다음 해 1월 1일 솔선수범하고 유길준과 정병하에게 명령을 내려 전국에서 실시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자 전국에 걸쳐 유림들의 통곡 소리가 이어지고 수구파와 위정척사파의 반발과 시위와 상소와 대중 집회로 이어 지면서 단발령은 결국 황제 고종이 직접 철회 성명을 발표하고서야 사태가 가라앉았다.
1897년 민영환이 영국공사로 갔을 때 런던에 도착하여 각국 사신들을 보니 모두 하나같이 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고 있는 것이었다.
민영환은 유독 자기만 상투를 틀고 한국식 의복을 입은 차림을 부끄럽게 여겨 자신도 상투를 자르고 양복으로 바꿔 입었다.
그때 영국 빅토리아 여왕은 조선은 아직 상투를 자르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그 모습을 구경하고자 민영환을 특별히 불러들였다. 그러나 그때 민영환은 이미 상투를 잘라버린 뒤였다.
민영환과 윤치호 외에도 외국을 다녀온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단발령에 동참하자, 고종은 1900년을 기해 단발령을 다시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관찰사 박중양은 단발령이 시작될 무렵 일부 인사들과 함께 단발령의 효율성을 알리고 이것을 보급하는 운동에 참여하였다. 1906년 경상북도 관찰사로 새로 부임한 박중양은 영해 지방 한 고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상투 자르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영해군으로 초도순시를 간 그는 연설을 통해 백성에게 감명을 주고 이런 말을 하였다.
"나에게 따로 인사하고 싶은 사람은 이 연설회가 끝난 뒤에 군청 관아로 들어오시오!"
관찰사의 말을 들은 주민들을 한 사람씩 따로 만나겠다는데 감지덕지한 유지 기관장들은 좋다고 하고 관아로 줄을 지어서 들어갔다. 그때 관아 삼문 뒤에 숨어 있던 일본 순사들이 관찰사 박중양에게 인사를 드리겠다며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가위로 들이대고 상투를 잘라버렸다.
한꺼번에 수백 명의 상투가 잘려 나가자 관아는 금세 통곡 바다를 이루었다. 그러나 박중양은 위생에 편리하다는 이유로 단발령을 권고했고 호응이 적은 곳은 직접 찾아가 순사들을 매복시키고서 단발을 강행하였다.
그래도 보수 경향이 있는 유학자와 유교를 신봉하는 관료들은 격렬히 반발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단발령에 호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3. 을사늑약
일본은 러시아와 대립하면서 1904년 2월, 일본이 대한제국에게 ‘한반도 내에 영토, 시설 등 군사적 이용을 협조할 것'을 강요하는 내용의 한일의정서를 체결하고, 그해 8월에는 제1차 한일 협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외교, 재정 등 각 분야에 고문을 두고 대한제국의 내정에 간섭하였다.
1905년 11월, 일본은 일방적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제2차 한일 협약을 발표하고, 한성에 조선통감부를 설치하고 통감정치를 단행하였다. 이것이 을사늑약이다.
을사늑약에 서명한 5적은 내부대신 이지용, 군부대신 이근택, 외부대신 박재순, 학부대신 이완용,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이다. 이들을 을사5적 또는 매국노라 한다. 매국노는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이라는 뜻이다. 5적을 죽이겠다는 암살단이 조직되었다.
각계각층에서 일본제국의 침략을 규탄하고, 을사늑약의 폐기를 주장하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다시 의병이 일어나 무장 항전을 벌였다. 분노를 느낀 많은 애국열사들은 항쟁을 하였고 이를 막지 못한 민영환은 자결을 하였다.
1905년 이후 대한자강회와 대한협회, 신민회 등이 국권 회복을 위한 애국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대한제국은 1905년 제2차 한일 협약으로 외교권을 강탈당하고 말았다.
<을사늑약>
을사보호조약, 을사조약, 을사5조약 ; 한국 정부와 일본은 두 나라를 결합하는 이해 공통의 주의를 공고히 하고자 한국 부강의 실리를 얻을 때까지 이 목적으로써 조관을 약정한다.
1) 일본은 한국의 외교에 관한 사무를 통리 지휘하고 일본의 외교 대표자는 외국에 있는 한국의 신민 및 이해를 보호한다.
2) 한국은 앞으로 일본의 허락없이 외국과 조약을 맺지 않는다.
3) 일본은 이를 위해 한국에 통감부를 실시한다는 것 등을 골자로 한 5개 조항으로 체결된 것이다.
[조선사 읽을 거리]
(조선사) 1. 조선의 건국 - 한양천도, 무학대사, 함흥차사 이야기
(조선사) 2. 새 역사 500년 - 조선 시대의 구분
(조선사) 3. 조선 초기 - 왕자의 난, 사대교린 정책, 세종의 업적, 단종애사, 사육신과 생육신
(조선사) 4. 붕당정치와 당파싸움, 무오사회, 갑자사회, 기묘사화, 금삼의 피, 임꺽정의 출현
(조선사) 6. 광해군 폐위과 인조반정, 삼전도의 굴욕, 세도정치, 사도세자, 홍경래의 난과 김삿갓
(조선사) 7. 복잡한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과 쇄국정책, 강화도조약과 임오군란
(조선사) 8.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을미사변, 아관파천 명성황후 시해사건
(조선사) 9. 대한제국의 탄생과 멸망, 헤이그특사, 한일합방과 식민통치
(조선사) 11. 문맹퇴치 운동, 브나로드(계몽)운동, 한국어 사용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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