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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수행평가용

(조선사) 5.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교육전문가집단 2023. 12. 21.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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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비참한 7년
2. 최대의 위기
3. 구국의 성웅 이순신
4. 임진왜란 3대 대첩
5. 엄청난 피해


1. 비참한 7년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2차에 걸쳐 조선을 침략한 전쟁이다. 특히 제2차 침략을 정유채란이라고 한다.

때는 조선 제14대 선조 25년부터 선조 31년 사이였다. 지배 계급들이 당을 만들어 붕당정치를 하면서 당파 싸움으로 시끄럽고 정치와 사회는 문란해지고 국방정책이 제대로 서지 않고 무너진 상태였다. 이에 앞서 율곡 이이는 10만 명의 병사를 훈련시켜야 한다는 10만 양병설을 주장하였으나 오히려 배척당하고 말았다.

그때 한반도 남쪽 바닷가에는 왜구들의 노략질이 잦았다. 다만 전라좌수사 이순신만이 홀로 거북선을 만들면서 대비하고 있었다. 일본은 이런 가운데 서양의 새로운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여 상업과 공업을 일으켜 새롭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다스리면서 나라를 안정시키고 신식 무기로 무장한 군대를 양성하여 쓰시마 섬 도주를 앞세워 조선과의 통상을 요구하였다.

말이 통상일 뿐 조선은 일본과 수호조약을 맺고 중국 명나라를 공격하자는 것인데, 수호조약 문구에 정명가도(征明假道)라는 단어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 문구는 일본이 명나라를 침략할수 있도록 한반도에 길을 열어 놓으라는 것이었다.

조선이 이를 거부하자 도요토미는1952년 4월 14일 고니시를 대장으로 한 제1진 1만 8000명의 왜군을 350척에 태워 부산항구로 침입해 들어왔다. 활과 칼을 든 조선 군대는 유럽식 소총(조총:화승총)을 쏘아대며 물밀듯이 들어오는 일본 군대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날로 부산이 점령당하고 다음날 동래도 빼앗겼다. 일본 군대는 불과 보름 만에 한강까지 치밀고 올라왔다.

다급해진 선조는 신하들은 이끌고 한양(서울)을 떠나 평북 의주로 피신하면서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였다. 손쉽게 한양을 점령한 왜군은 계속 북으로 밀고 올라가 한반도가 거의 왜군에게 짓밟혔다.

왜군은 육지에서 약탈과 방화를 마구 저지르고 무고한 사람들을 살상하는 야만적 만행을 거듭하였다. 그때 육지에서는 곽재우 등 의병이 일어나 곳곳에서 왜군과 전쟁을 벌였고,바다에서는 이순신이 거북선을 앞세워 왜군을 무찌르며 승리를 거듭했다.


2. 최대의 위기 병자호란

 
조선 중기 때의 가장 큰 위기는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병자호란이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1592년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침략해 임진왜란을 일으킨 이래 모두 20만 병력을 파견하면서 한반도를 초토화시켜 버렸다.

선조의 뒤를 이은 제15대 광해군은 일본과 두 차례의 전쟁을 치른 후 피폐해진 국토를 정비하기 위해 왕권을 강화하였다. 실리 외교를 펼쳐, 새롭게 떠오르는 청나라와 망해가는 명나라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내세웠다.

제16대 인조는 명나라와의 친선 정책을 펼쳤고, 이에 자극받은 청나라는 1627년 정묘호란과 1636년 병자호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공하였다. 조선은 이 전쟁에서 패하여 항복을 선언하고 청나라를 섬기게 되었다.

전란으로 국토는 황폐해지고,국가 재정은 고갈되었으며, 백성들은 비참한 생활을 강요당하였다. 청나라에게 더 이상 끌려가지 말자는 북벌론이 대두되었으나, 실천하지 못했고, 청나라를 본받자는 북학론이 일어났다.


3. 구국의 성웅 이순신


선조 16년 이율곡은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여 10만 양병실을 주장했다. 새로운 병력 10만명을 양성하여 서울과 각 지방에 배치하자는 것이었다.

선조 24년인 1591년 일본이 쳐들어올 것이라는 소문이 전해졌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김정일을 포함한 동인들이 아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면서 큰소리쳤다. 다음 해 1592년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20만 병력을 파견하여 조선을 침략했다. 조선은 초반 방어체제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왜군의 신무기인 조총에 크게 당하고 말았다.

부산진의 정발과 동래성의 송상현이 삽시간 만에 왜군에게 무너지고, 상주의 이일과 충주 탄금대에서 진을 치고 있던 신립도 무너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의주까지 피난을 가야 했다

왜군은 싸움을 건 지 보름여 만에 한강에 이르렀고 20일 뒤에 한양까지 들어왔다. 임진강 방어선도 간단히 뚫은 채 평양까지 손쉽게 점령당했다.

이때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거북선을 앞세워 옥포, 사천, 한산도 해전에서 일본 수군을 격파하여 일본에서 들어오는 군사 보급 수송 작전을 거의 끊어 버렸다. 이와 함께 여러 지역에서 의병이 일어나고 관군은 명나라의 지원군에 힘입어 왜군을 반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일본 육군은 일본으로부터 들어와야 하는 보급이 막혀 더 이상 북진할 힘을 잃었다.그러는 사이에 의병과 관군의 반격은 계속되면서 싸움은 지리멸렬하게 이어졌다.

1597년 1월 왜군이 경상도 해안에서 육지로 다시 올라오며 공격을 시작했다. 이를 정유채란이라고 한다. 

1598년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왜군에게 철수 명령이 떨어졌고, 이순신의 노량대첩을 끝으로 7년의 임진왜란도 막을 내렸다. 이순신은 노랑 해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막판에 전사하였다.


4. 임진왜란 3대 대첩


1. 한산도대첩 : 임진년(1592) 7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연합함대는 한산도 앞바다에서 왜선 60척을 전멸시켜 왜의 수군에 큰 타격을 주고 해상권을 잡았다.

2. 행주대첩 : 1593년 2월 전라 순찰사 권율이 한양 수복을 위해 북상하다가 경기도 행주산성에서 왜적을 크게 쳐부수어 승리한 싸움을 말한다. 이때 동원된 부녀자들이 앞치마로 돌을 날라 석전을 벌인 것이 유명하다.

3. 진주성대첩 : 1차 혈전은 1592년 10월, 3만 명의 왜군 연합부대가 공격해 왔으나 진주목사 김시민이 끝까지 이를 고수하였으며, 이때 의병 곽재우가 합세하여 화약물과 돌로 왜군을 물리쳤다. 2차 혈전은 1593년 6월, 1차전의 패전을 설욕하고자 일본이 대군으로 공격, 의병인 고종후, 강희열 등이 참가하여 항전하다 전원이 전사하였다.

홍의장군 곽재우 : 임진왜란을 극복하는데 중요하게 공헌한 장수 중의 한 사람이다. 수십인으로 출발한 의병은 2000명에 이르는 큰 병력을 휘하에 가질 수 있었으며, 그 병력을 바탕으로 많은 전공을 세웠다.


5. 엄청난 피해


선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제15대 광해군은 일본과 두 차례의 전쟁을 치른 후 피해 복구사업에 노력하였다. 성곽과 무기를 수리하고, 군사들을 매일 훈련해 국방을 강화하였고, 호적을 다시 정비했다.

임진왜란 초기 도성이 함락되어 노비문서와 군적 등이 불에 탄 이후에도 전란중에 노비, 호적 등의 문서를 소각하여 많은 양의 도망노비와 유랑민이 나타났다. 이는 조선 후기의 신분제 붕괴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었다.

임진왜란 직후에 조정에 곡식과 금전 등을 내고 관직을 사는 공명첩(空名帖)과 선무군관(選武軍官) 등의 임명장 발행으로 조정의 재정을 충당하였고, 전란 중의 호적 자료의 소실로 일부 부유한 상인들과 농민들은 가난한 양반의 족보를 사들이거나 위조하는 일까지 나타났다.

임진왜란 직후 전쟁중 세운 공로로 벼슬을 받거나 노비에서 면제된 이들을 다시 노비로 환원시켜 불만이 일자, 광해군은 임진왜란 전후에 대한 사료를 보강하고 공이 있는 노비와 양인에게는 부역을 면제시키거나 관직을 제수하였다.

전쟁 기간에 불에 탄 사고(史庫)를 재정비했다. 사고는 정부의 주요 문서 기록이나 역사서적을 보관한 건물이다. 실리를 중시한 외교를 펼쳐, 새롭게 떠오르는 청나라와 망해가는 명나라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내세웠다.

공명첩 : 수취자의 이름을 기재하지 않은 백지 임명장
선무군관 : 조선 후기 지방의 부유한 평민으로 조직되어 평상시에는 군관포를 내면서 무예를 익히다가, 유사시에는 소집되어 군졸을 지휘한 군관

 


[조선사 읽을 거리]

(조선사) 1. 조선의 건국 - 한양천도, 무학대사, 함흥차사 이야기

(조선사) 2. 새 역사 500년 - 조선 시대의 구분

(조선사) 3. 조선 초기 - 왕자의 난, 사대교린 정책, 세종의 업적, 단종애사, 사육신과 생육신

(조선사) 4. 붕당정치와 당파싸움, 무오사회, 갑자사회, 기묘사화, 금삼의 피, 임꺽정의 출현

(조선사) 5.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조선사) 6. 광해군 폐위과 인조반정, 삼전도의 굴욕, 세도정치, 사도세자, 홍경래의 난과 김삿갓

(조선사) 7. 복잡한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과 쇄국정책, 강화도조약과 임오군란

(조선사) 8.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을미사변, 아관파천 명성황후 시해사건

(조선사) 9. 대한제국의 탄생과 멸망, 헤이그특사, 한일합방과 식민통치

(조선사) 10. 광무개혁, 단발령, 을사늑약

(조선사) 11. 문맹퇴치 운동, 브나로드(계몽)운동, 한국어 사용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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