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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나정의 신화 (나정 - 박혁거세가 태어난 우물)

2. '신라'라는 국호와 '왕'이라는 임금의 칭호

3. 신라의 계급 - 성골과 진골

4. 신라의 역사적 구분 

 

 

1.  나정의 신화 (나정 - 박혁거세가 태어난 우물)

 

신라(新羅)는 기원전 57년 박혁거세가 건국한 나라이다. 

제56대 경순왕까지 992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다가 935년에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물려주었다.

 

고구려, 백제와 함께 삼국 시대의 삼국 중 하나로, 현재의 한반도의 동남부 및 한반도의 대부분을 지배하였던 국가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존속했던 왕조들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신라'라는 국호는 ‘왕의 덕업이 날로 새로워져서 사방을 망라한다.'라는 의미로 제22대 지증왕 때에 정해졌다. 

경북 경주 지역에서 기원전 57년에 건국된 신라는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세워졌지만, 국가의 틀을 세우는 데는 가장 늦었다.

 

6세기 때 제23대 법흥왕이 불교를 받아들여 왕권 강화와 백성의 단결을 도모하였으며, 제24대 진흥왕 때에 신라 최초로 전성기를 맞았다.

 

7세기 경 한강 유역을 차지하였고, 589년에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의 뒤를 이은 당나라와 나. 당 연합을 맺어 660년에 백제를, 668년에는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 시켰다. 이로써 대동강 이남으로부터, 원산만에 이르는 지역을 차지하여 부분적인 삼국 통일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나.당 동맹을 맺어 삼국을 통일한 뒤 당나라가 계속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드러내자 전쟁을 통해 이들을 몰아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고조선의 유민인 진한 6부가 자신들을 다스려 줄 임금을 원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내려온 백마가 전해 준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를 맞이하여 기원전 57년에 거서간(임금)으로 세운 것이 신라의 건국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경주 부근 6부 촌의 촌장들이 어느 날 양산 기슭에서 나라의 어른을 선출하는 문제를  의논하고 있었다. 그때 나정(우물) 쪽으로 하늘에서 이상한 빛이 내려오면서 백마가 내려왔다.

 

그들이 가보니 백마가 커다란 알을 두고 사라졌다. 촌장들이 알을 깨뜨렸더니 준수한 사내아이가 나왔다. 알에서 태어났다 하여 박혁거세라고 이름을 짓고 아기를 길렀는데 씩씩하게 잘 자랐다. 그래서 그를 임금으로 삼았다. 그가 임금에 오른 해가 기원전 57년이었다.

 

신라는 처음 진한의 소국의 하나인 사로국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이다. 기원전 27년에는 성을 쌓고 금성이라 불렀다. 그 뒤 동해안으로 들어온 석탈해 집단이 등장하면서 박(朴), 석(石), 김(金)의 유력 집단의 우두머리는 이사금 (군주)으로 추대되었고, 주요 집단들은 독자적인 세력 기반을 유지하였다.

 

신라는 원래 6부 연맹에서 촌장 합의로 출발한 나라다. 

6부는 알천 양산촌, 돌산 고허촌, 취산 진지촌, 무산 대수촌, 금산 가리촌, 명활산 고야촌이다. 왕과 신하들이 남당에 모여 국가의 중요한 일을 의논하고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결정짓지 않는 전원 찬성 제도를 시행하였다. 이를 화백 또는 화백회의라고 하였다.

 

 

<삼국사기> (三國吏記)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김부식이 1145년에 완성한 삼국시대 역사책이다.

현존하는 한국 역사책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신라. 고구려. 백제 삼국의 정치적 흥망 변천을 주로 기술한 역사책이다. 

 

1970년 옥산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판본이 대한민국의 보물 525호로 지정되었다. 

그밖에 1981년 조병순 소장 영본(零本)과 경주부 간본(慶少卜府干U本)이 각각 보물 722호, 723호로 지정되었다. 

 

편찬 과정은 고려 왕조가 이자겸의 단과 묘청의 난 등 귀족 사회의 동요를 수습하고 난 뒤, 앞 시대의 역사를 공식으로 정리 편찬했다. 

고기(古記). 유적 혹은 중국의 여러 사서에서 뽑아 편찬, 간행하였다.

 

(삼국사기)를 편찬하기 시작한 정확한 시기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부식이 묘청의  난을 진압하고 난 후에 감수국사에서 편찬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는 설과, 김부식이 은퇴한 뒤 1142년에 시작했다고 보는 설이 있다. 

 

다만 <삼국사기>가 완성된 시기는 1145년(인종 23년)이다. 

<삼국사기> 편찬에 참여한 편수관은 총 l1명으로 감수국사 김부식을 필두로 최산보, 이온문, 허홍재, 서안정. 박동계, 이황중, 최우보, 김영온 9명과 김충효, 정습명 2명의 관구이다

 

구성 및 내용은 <본지>, <연표>. <지(志)>, <열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지>는 신라, 고구려, 백제 이 세 나라의 역사를 각각의 본기로 나누어 편년체로 서술하였으며, 총 28권이다.

 

 

2. '신라'라는 국호와 '왕'이라는 임금의 칭호

 

신라의 국호는 여러 가지로 불렸다. 

신로. 시라. 서나. 서라벌. 서야. 서라. 서벌. 계림 등이 그것이다.

왕에 대한 칭호도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등 여러 가지였다.

신라의 국호와 왕의 호칭이 이처럼 다양했던 것은 신라 고유어를 사용한 탓이었다.

 

제22대 지증 마립간 4년인 504년에 한자 국호를 ‘신라'로 확정하고,왕에 대한 칭호도 ‘왕'으로 정했다. 이런 사실을 <삼국사기>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지증 마립간4년 겨울 10월에 여러 신하들이 아뢰었다. 그래서 왕이 그대로 따랐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국호는 신라로, 임금은 왕으로 불렀다. 따라서 지증 마립간도 지증왕이라고 하였다.

 

 

<삼국사기> 기록

" 시조께서 나라를 창업하신 이래로 국호가 정해지지 않았거나, 혹은 ‘사라'라 일컫고, 혹은 ‘사로'라 하며, ‘신라'라고도 하였습니다. 저희들은 ‘신'이라는 글자는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라'라는 글자는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으로 생각해 온 즉, 이를 나라이름으로 삼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또 예로부터 나라를 가진 이들을 보면 모두‘제(帝)'나 ‘왕(王)'을 일컬었으니 우리 시조께서 나라를 세워 지금에 이르기까지 22대 동안 단지 방언으로만 왕의 호칭을 일컫고 존귀한 칭호를 바로잡지 못했습니다. 이제 여러 신하들이 한 뜻으로 삼가 ‘신라 국왕'이라는 칭호를 올리나이다.”

 

 

3. 신라의 계급 - 성골과 진골

 

신라는 혈연에 따라 사회적 제약이 가해지는 골품제도가 있었다. 

골품은 신라 사회에서 개인의 사회활동과 정치활동의 범위까지 엄격히 제한하였다. 관등 승진의 상한선이 골품에 따라 정해졌다.

 

성골(聖骨)은 부모가 모두 왕족인 사람이다. 박, 석, 김 씨 계열이 순수한 왕족인 성골이다.

진골(眞骨)은 부모 가운데 한쪽은 왕족이 아닌 사람이다. 한쪽은 왕족의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것인데, 삼국통일의 길을 열어 놓은 제29대 태종 무열왕 이후의 왕들이 이에 속한다

 

 

4. 신라의 역사적 구분 

 

일반적으로 신라의 역사를 구분할 때는 <삼국사기>의 구분을 따른다. 신라 왕실의 변화에 따라 상대, 중대, 하대로 나누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삼국유사>는 불교와 연관 지어 상고. 중고. 하고로 신라 역사를 구분하였다.

 

한편으로는 신라사를 5기로 구분하기도 한다. 

 

제17대 내물왕 이전을 제1기, 

내물왕부터 제22대 지증왕까지(356년-514년)를 제2기,  

제23대 법흥왕부터 제28대 진덕여왕까지 (514년-654년)를 제3기, 

제29대 태종 무열왕부터 제36대 혜공왕까지(654년-780년)를 제4기, 

제37대 선덕왕부터 마지막 제56대 경순왕까지 (780년-935년)를 제5기로 보는 견해이다.

 

대체로 <삼국사기>의 구분을 따른다.

 

 

<삼국사기>의 구분

 

상대 (上代) : 제1대 시조 박혁거세 - 제28대 진덕여왕 때까지.

 

기원전 57년-기원후 654년, 28대 왕이 통치한 771년 간이다. 이 시기는 성골이 왕위를 독점하던 때였다. 실제 골품 제도가 성립되고 성골 왕실이 확립된 것은 상당한 세월이 지난 뒤였다. 원시 부족 국가. 씨족 국가를 거쳐 고대 국가로 발전하여 골품 제도가 확립되는 단계이다.

 

중대 (中代) : 제29대 태종 무열왕 - 제36대 혜공왕 때까지. 

 

654년 - 780년, 8대 왕이 다스린 127년 간이다. 이때는 성골 왕통이 끝나고 진골의 태종 무열왕 김춘추에서부터 그의 직계 후손이 왕위를 이어간 100여 년 동안을 말한다.

삼국을 통일하고 전제 왕권이 확립되면서 전쟁 없는 평화 시대가 이어지면서 찬란한 문화의 황금기를 이루었다. 여러 국가들과 교역한 시대였다.

 

하대 (下代) : 제37대 선덕왕 - 제56대 경순왕 때까지. 

 

780년 - 935년, 20대 왕이 다스린 156년 간이다.

무열왕계 왕실이 끊어지고 내물왕 계통의 진골 왕실이 성립된 시기이다.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내부의 분열이 계속되고, 골품제도가 붕괴되었다.

귀족들이 족당을 형성하여 권력 다툼을 벌이고 지방의 호족과 해상 세력이 등장하면서 나라가 몹시 흔들리고 후삼국으로 이어지면서 혼란이 커져 멸망으로 치닫던 시기이다.

 

 

 

[고대사 링크 목록]

 

1. 한반도에서 고조선 이전의 역사 (상고시대)

2. 고조선, 단군설화, 위만조선, 한사군, 부족국가시대

3. 고구려의 건국과 전성기, 고주몽의 건국 신화, 유리왕과 황조가

4. 낙랑과 호동 (자명고),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불교의 전래

5. 살수대첩과 을지문덕, 양만춘의 안시성 전투, 연개소문의 천리장성

6. 강인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고구려의 문화와 예술

7. 백제의 건국~멸망, 계백의 황산벌 전투, 의자왕과 낙화암의 전설

8. 백제의 무령왕릉, 사비성고분, 부흥운동, 중국,일본과의 교역, 건축과 미술

9. '신라' 국호의 유래, 삼국사기로 본 시대 구분, 성골과 진골의 차이

10. 신라의 영토확장, 화랑도와 세속오계, 선덕여왕의 일화, 백결의 방아타령

11. 신라의 통일, 왕권 강화와 흥망성쇠 과정, 불교 유적(불국사, 석굴왕), 최치원의 등장

12. 후삼국시대 양길의 봉기, 견훤의 후백제, 궁예의 후고구려

13. 해동성국 발해의 건국에서 멸망까지의 220년 간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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